"용해 이월 보름달 뜨고, 막 핀 청매 향에 취하고.
2024.3, 부암동 명소 무계동에서, 이태호그림"
올해 정월 보름달은 비구름이 하늘에 가득한 하늘로 떴다. 지상에서는 달보기 어려웠다. 대신에 3월 24일 음력 2월 보름달을 도성 밖 부암동 무계정사 근처에서 맞이했다.
작년 정월 보름 무계동구(武溪洞邱) 주인 장창기 선생, 안동대 한문학과 신두환교수 등과 함께 자리했던 곳이다. (이태호의 여행스케치 19)
올해에는 이들과 이순신 연구자 노승석 선생 등 사내들이 어울려 보름달 월출 장면을 함께 감상했다.
주역에 밝은 노선생이 모두 화합하는 모임이라는 의미로 잔치 달 '연월(宴月)'이라 그 성격을 집약하니, 막 정년 퇴임한 신교수께서 매달 보름달과 만나잖다.
이번 보름달은 날씨도 쾌청해 좋았다. 여섯시 좀 지날 무렵, 파란 봄하늘에 하얀 달이 백악산 오른편 팔부능선쯤으로 소리없이 떠올랐다.
부암동 안평대군의 옛터인 무계정사 근처에서 보름달을 보려니, 마춤인 듯 무계원 뜰에 나이 먹은 청매(靑梅) 세 그루가 짙은 꽃향기를 뿜어낸다.
월매도를 몇점이나 시도해 보았다. 달과 매화, 옛 시인 화가들이 사랑한 자연물 소중이였다. 오만원짜리 지폐 뒷면에는 조선시대 문인화가 어몽룡의 <월매도>가 등장하듯, 그림이 돈도 됐음 좋겠다.
"노매가지 청매 꽃 피고, 꽃향기에 음력 이월 보름달 걸리고.
2024.3, 부암동 무계원에서, 이태호그림"
청매는 꽃받침이 연녹색이어서 붙친 이름이다. 백매나 홍매보다 꽃향기가 제일이고, 품위진다.
무계원에는 안평대군이 복사꽃밭 꿈을 꾸었던 곳인데, 청매화가 대신 자리해 있다. 무계원 전시실에는 안견이 1447년 4월 안평의 꿈 이야기를 그린 <몽유도원도> 복제본을 전시해 놓았다.
음력 2월 보름달, 곧 양력 3월 보름달의 의미를 검색해보니 북아메리카 문화에 warm moon이라 뜬다. '따뜻한 봄달'이라는 의미겠다. 원주민 농경문화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봄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절이니 만큼 풍년을 기원하는 공동체 행사를 벌인단다.
한학자 · 시인 정동운선생 7언시
題付岩洞武溪園梅花望月圖二幅(제부암동무계원매화망월도이폭)
부암동 무계원 보름달과 매화 그림 2폭에 쓰네
梅老新枝方醉香(매로신지방취향) 늙은 매화 새 가지 막 향기에 취하고,
仲春十五滿圓光(중춘십오만원광) 음력 2월 봄 15일 둥근 빛 가득하네.
戀心慕思層層積(연심모사층층적)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 층층이 쌓여,
宴月溪園動四郞(연월계원동사랑) 무계원(武溪園)에서 잔치 달이 네 사내들 흔드네.
한학자 · 시인 장재석선생 5언시
中春望月圓
이월 보름달은 둥글고
嫩枝靑梅姸
여린 가지의 청매는 곱구나
月梅常其樣
달과 매화는 늘 그 모습인데
會友非其面
모인 벗은 그 얼굴들이 아닐세